두산밥캣 vs 캐터필러
4개국 동시 특허 전쟁의 해부
이 사건은 단순한 특허 분쟁이 아닙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교과서적인 지식재산권 분쟁 사건"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각국의 특허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조합해 경쟁사를 다면적으로 압박한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사건의 전체 구조를 해부하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실전 전략을 정리합니다.
당사자 분석 — 36건 vs 979건, 비대칭 전쟁
이 사건의 흥미로운 점은 양측의 규모 차이입니다. 유럽 특허 포트폴리오만 놓고 보면 두산밥캣은 캐터필러의 27분의 1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먼저 공격을 선택했습니다.
주목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두산밥캣은 유럽에서 단 한 번도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 캐터필러는 이미 2017년 독일 Wirtgen으로부터 이탈리아에서 특허 침해로 피소된 이력이 있으며, 밀라노 법원에서 일부 침해가 인정된 바 있습니다.
특허 포트폴리오의 양이 아니라 질과 전략이 승부를 결정합니다. 두산밥캣은 36건 중 핵심 특허를 정밀하게 선별하여, 상대의 주력 제품을 정확히 겨냥했습니다. 979건을 가진 캐터필러가 방어에 몰린 구도입니다.
무기 분석 — 14건의 특허, 정밀한 선택
두산밥캣이 이 전쟁에 투입한 특허는 총 14건입니다. 이를 법원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 특허)
(유럽 특허, 비중복)
+ ITC (미국 특허)
중요한 점은 UPC에 제기한 2건과 뮌헨 지방법원에 제기한 3건의 특허가 서로 중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만 5건의 서로 다른 특허로 공격하고 있는 셈이죠.
UPC 계쟁 특허 (만하임 지역부)
| 특허번호 | 명칭 | 핵심 기술 | 미국 우선권 |
|---|---|---|---|
| EP 2162311 | 차량용 구동 제어 시스템 및 방법 | 울퉁불퉁한 지형에서 좌우 트랙·휠 속도와 방향을 정밀 제어하여 직진성과 조향성 유지 | 2007.06 출원 (US 8364356) |
| EP 2347054 | 일체형 유압 또는 전기 도관 연결부 | 로더 리프트 암 내부에 유압·전기 도관을 내장, 일체형 연결부로 한 번에 탈착 | 2008.10 출원 (US 8047760) |
뮌헨 지방법원 계쟁 특허 (비중복, 별도 3건)
| 특허번호 | 명칭 | 등록일 |
|---|---|---|
| EP 3535458 | 리프트 암에 대한 작동 구역을 정의하기 위한 시스템 및 방법 | 2023.07.12 |
| EP 1887148 | 작업기계 또는 차량용 외부 제어 시스템 | 2017.10.04 |
| EP 2255258 | 캐리어·굴착기 제어 시스템 및 방법 | 2020.01.15 |
이 특허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소형 굴착기의 핵심 성능 — 기동성, 제어, 유압 시스템 — 과 관련된 기술입니다. 즉, 캐터필러가 이 분야에서 경쟁하려면 회피하기 어려운 기술들을 골라서 공격한 것입니다.
두산밥캣의 특허 선택에서 배울 점은, 경쟁사의 '핵심 제품의 핵심 기능'을 겨냥하는 특허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적인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우회할 수 없는 기술에 대한 특허가 진짜 무기가 됩니다.
전장 분석 — 4개 법원 동시 공격의 의미
이 사건의 가장 주목할 점은 단일 소송이 아니라 다전선(multi-front)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특허 2건
특허 3건 (비중복)
특허 9건, 소송 2건
수입 차단 목적
각 법원의 역할이 다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UPC 만하임 — "한 번에 유럽 17개국"
UPC의 최대 장점은 하나의 판결이 17개 회원국 전역에 효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승소하면 캐터필러는 유럽 전역에서 침해 제품의 판매를 중단해야 합니다. 기존처럼 나라별로 따로 소송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두산밥캣이 UPC 중에서도 만하임(Mannheim) 지역부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입니다. 만하임은 독일 내에서도 특허 소송 처리 속도가 빠르고, 특허권자 친화적인 판결 경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뮌헨 지방법원 — "보험과 압박"
UPC에 2건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뮌헨 지방법원에 다른 특허 3건으로 별도 소송을 걸었습니다. 왜 같은 독일에서 두 곳에 동시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UPC가 아직 2년밖에 안 된 새 법원이라 결과를 100% 예측할 수 없습니다. 뮌헨 지방법원은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검증된 법원입니다. UPC가 안 되더라도 뮌헨에서 잡는다는 보험입니다. 둘째, 서로 다른 특허로 여러 법원에서 동시에 공격하면, 피고 측은 각 법원에 별도로 대응해야 합니다. 방어 비용과 리소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미국 텍사스 — "본토 공격"
캐터필러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공격했습니다.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미국 특허 9건을 근거로 소송 2건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는 캐터필러 본사와 계열사를 상대로, 다른 하나는 캐터필러의 텍사스 지역 판매 기업인 Holt Texas를 상대로.
ITC — "수입 자체를 차단"
가장 강력한 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입니다. ITC는 불공정 무역 행위를 조사하는 기관으로, 침해가 인정되면 해당 제품의 미국 수입 자체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법원 소송과 달리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물리적인 수입 금지라는 점에서, 제조업체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이 다전선 전략의 핵심은 "어디에서든 하나만 이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4곳 중 1곳에서만 승소해도 캐터필러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캐터필러는 4곳 모두에서 방어해야 합니다. 공격 측에 구조적으로 유리한 게임입니다.
원고의 핵심 주장 — "의도적 모방"
두산밥캣의 주장은 단순한 특허 침해를 넘어섭니다. 핵심 주장 세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특허 침해: 캐터필러가 소형 굴착기의 기동성·제어·유압 시스템 관련 계쟁 특허를 침해했다.
- 의도적 모방: 캐터필러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두산밥캣을 포함한 경쟁사 제품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여 기술을 차용했다. 단순 침해가 아니라 고의적 모방이다.
- 불공정 경쟁: 경쟁사 기술을 조직적으로 모방하여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이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해치는 행위다.
두산밥캣은 법원에 침해 행위의 즉각적인 중지, 침해 제품의 판매 금지·회수·폐기, 그리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주의할 점: "의도적 모방(willful infringement)" 주장이 인정되면, 미국 법원에서는 일반 특허 침해 대비 최대 3배의 손해배상(treble damages)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두산밥캣이 단순 침해가 아닌 "의도적 모방"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런 전략적 계산이 있습니다.
실전 시사점 — 이 사건에서 배울 5가지
1. 특허 포트폴리오는 "양"이 아니라 "배치"가 중요하다
두산밥캣의 유럽 특허는 36건으로, 캐터필러(979건)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하지만 핵심 제품의 핵심 기능에 대한 특허를 전략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기에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특허는 많이 가진 쪽이 아니라,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겨냥한 특허를 가진 쪽이 유리합니다.
2. UPC는 중견기업에게 기회다
과거에는 유럽 전역에서 특허를 행사하려면 나라별로 소송해야 했습니다. 비용과 시간이 막대해서 대기업만 가능한 게임이었죠. UPC의 등장으로 한 번의 소송으로 17개국을 커버할 수 있게 되면서, 중견기업도 유럽 전역에서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렸습니다.
3. 다전선 전략은 공격 측에 구조적으로 유리하다
4개 법원에 동시에 소송을 제기하면, 공격 측은 1곳만 이기면 성공입니다. 방어 측은 4곳 모두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 비대칭 구조가 자원 열위의 공격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각 법원에 투입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특허가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4. ITC는 제조업체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일반 법원 소송은 "돈으로 배상하라"는 판결이지만, ITC는 "제품 자체를 미국에 들여놓지 마라"는 판결입니다. 제조업체에게 미국 시장 수입 차단은 사업 자체에 대한 위협이므로, 협상 레버리지가 매우 큽니다.
5. 유럽 특허를 가진 기업은 지금 UPC opt-out을 검토해야 한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 UPC는 공격 수단으로도, 방어 위협으로도 작용합니다. UPC에 대한 opt-out 조치를 하지 않은 유럽 특허는 자동으로 UPC 관할에 들어갑니다. 즉, 누군가가 UPC에서 당신의 특허에 무효 소송을 걸면, 한 번에 유럽 전역에서 특허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전 가이드 — 우리 회사에 적용한다면
유럽 특허를 보유한 기업의 UPC 체크리스트
- 자사 유럽 특허 목록을 확인하세요. 유럽특허청(EPO)에 등록된 자사 특허가 몇 건인지, 어떤 기술 분야인지 파악합니다. 이미 만료되거나 유지료를 내지 않은 특허는 제외합니다.
- 각 특허별로 UPC 전략을 결정하세요. 공격에 활용할 핵심 특허는 UPC 관할에 남겨둡니다(opt-in 유지). 경쟁사의 무효 공격에서 지켜야 할 특허는 opt-out으로 UPC 관할에서 제외합니다.
- 경쟁사 특허 현황을 조사하세요. 경쟁사가 UPC opt-out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opt-out을 하지 않은 특허는 UPC에서 무효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다전선 전략의 가능성을 검토하세요. 두산밥캣처럼 UPC + 독일 국내법원 + 미국 법원을 조합한 전략이 자사에도 적용 가능한지 전문가와 상의합니다.
- IP 분쟁 예산과 로드맵을 수립하세요. 글로벌 특허 소송은 수십억 원 단위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사전에 예산을 확보하고, 어떤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할지 시나리오를 마련해 두세요.
UPC 소송 비용은 사건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건당 수억 원 수준입니다. 이는 기존에 유럽 5~6개국에서 개별 소송하던 비용(건당 수십억)에 비하면 상당히 절감된 수준입니다. 특히 중견기업에게 UPC는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선택지입니다.
본 분석은 한국지식재산보호원 분쟁정보분석실의 「두산밥캣 v. Caterpillar 간 소형 굴착기 기술 관련 특허분쟁」 분쟁동향조사 보고서(2026.01)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건번호: UPC 0001810/2025, 0001811/2025. 뮌헨 지방법원 사건번호: 15121/25, 15124/25, 15125/25.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사건번호: 2:25-cv-01184, 2:25-cv-01185.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법률 자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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