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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새벽 2시 47분, AI의 제안
서울의 한 신약 개발 회사 연구실. 박사 학위를 받은 화학자 이영준은 6개월간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다시 막혔다. 폐암 치료제의 분자 구조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계산값과 실제 실험값의 괴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피곤한 눈으로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던 그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자사에서 개발한 생성형 AI 약물 발견 시스템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기다렸다. 30초 후, 모니터에 3개의 새로운 분자 구조가 나타났다. 그중 두 번째 것이 눈에 들어왔다. AI의 분자 구조는 지금까지의 접근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AI는 인간의 직관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기존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효능을 극대화하는 설계를 제시했다.
흥분한 이영준은 곧바로 그 구조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3주 후,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AI가 제시한 분자 구조는 예상을 훨씬 초과하는 효능을 보였다. 이것은 분명 혁신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때 문제가 생겼다.
회사의 지적재산 팀이 물었다. "이 발명의 발명자는 누구죠?" 이영준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기술적으로는 AI가 분자 구조를 '창안'했다. 하지만 AI는 발명가로 등록될 수 없다. 한국 특허법상 발명자는 '인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영준이 발명자라고 주장하면, 그는 '발명을 했지만, 실제로는 AI가 한 것'이라는 이상한 상황에 빠진다.
혼란의 시대
AI 시대의 발명가는 누구인가? 법은 아직 답하지 못했다
CHAPTER 1
DABUS: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이 이야기를 현실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스티브 탈러(Stephen Thaler)라는 미국인 발명가입니다. 탈러는 자신이 개발한 생성형 AI 시스템 'DABUS'(Device for the Autonomous Bootstrapping of Unified Sentience)를 '공동 발명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미국 특허청(USPTO)에 신청했습니다.
DABUS가 창안한 발명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더 안전한 음식 용기(food container with a grip). 둘째는 신호 감지 장치(patent for a signalling device)였습니다. 이 둘 모두 기존 특허 문헌에 없는 새로운 구조로, 탈러의 AI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미국 특허법이 명확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특허법 35 U.S.C. § 101에 따르면, 발명자는 "person"이어야 합니다. AI는 법적으로 'person'이 아닙니다. 따라서 DABUS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특허청의 판정이었습니다.
탈러는 이에 항소했고, 미국 법원도 같은 판정을 내렸습니다(2022년 4월).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탈러는 전 세계의 특허청들에 같은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 국의 특허청과 법원들이 다양한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KEY INSIGHT
DABUS 판정의 핵심은 기술적 혁신과 법적 정의의 불일치입니다. AI가 실질적으로 발명을 창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이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국가결정 내용시점
미국거절 (AI는 발명자 불가)2022년 4월
영국거절 (인간 발명자만 인정)2022년 7월
호주인정 (일부 재검토)2022년 3월
유럽연합거절 (인간 발명자만)2023년 1월
남아공인정 (AI 발명자 등재)2022년 7월
흥미롭게도 호주와 남아공은 AI를 발명자로 인정했습니다(부분적으로). 호주의 판정 이유는 흥미로웠습니다. 호주 법원은 "특허법에서 '발명자'는 반드시 자연인(natural person)이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다"면서, AI도 발명자로 등록될 수 있다고 판정했습니다. 남아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의 결정은 '기술적 진보'에 법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선진국들은 여전히 '발명자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 특허 시스템의 선도국들은 모두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법적 전통(발명자는 인간). 둘째, 실질적 우려(AI가 발명자가 되면 누가 특허권을 소유하는가?).
호주 연방법원의 판정 (2022년 3월)
"특허법 개정 이전 호주는 동물, 영아, 정신 질환자 등을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범주도 변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실질적인 발명 활동을 했다면, 이를 법적으로 인정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AI가 실질적으로 발명을 창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이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CASE REFERENCE
호주 연방법원은 2022년 3월 판결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발명자의 범주도 변할 수 있다"며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정했습니다. 이는 미국, 영국, 유럽연합과는 대조적인 결정으로, 앞으로의 AI 발명 특허 정책의 방향을 놓고 국가 간 입장 차이가 명확함을 보여줍니다.
CHAPTER 2
미국 특허청의 가이드라인: AI는 협력자일 뿐
DABUS 판정 이후 미국 특허청은 2024년 2월 'AI 관련 발명 지침(Guidance on Patent Subject Matter Eligibility for AI-Assisted and AI-Generated Inventions)'을 발표했습니다. 이 지침은 현재 한국 특허청과 전 세계 특허청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특허청의 핵심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AI가 발명을 '창안'했더라도, 그 특허의 법적 발명자는 '인간'이어야 하며, 인간은 AI를 '이용한' 발명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미국 특허청은 두 가지 카테고리를 구분했습니다.
1 AI-Assisted Inventions (AI 보조 발명)
인간 발명자가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낸 후, AI를 도구로 사용하여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화학자가 "더 안정적인 구조를 찾아달라"는 목표를 AI에 제시하고, AI가 여러 옵션을 제시한 후 화학자가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발명자는 '인간'입니다.
2 AI-Generated Inventions (AI 자동 생성 발명)
AI가 인간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발명을 창안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AI에 단순히 "흥미로운 신약 분자를 찾아"라고만 입력하고, AI가 독자적으로 전혀 새로운 분자 구조를 설계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현재 대부분의 특허청이 '발명자 부재'로 거절합니다.
미국 특허청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실제 AI 발명은 첫 번째 카테고리(AI-Assisted)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정교한 AI라도,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목표', '제약',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주도한 발명'으로 본다는 뜻이었습니다.
2024년 미국 특허청의 지침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특허청도 2024년 말 유사한 지침을 발표했으며, 유럽연합의 지적재산청(EUIPO)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EY INSIGHT
미국 특허청 지침의 핵심은 '인간의 관여'입니다. AI가 도구로 사용되면 발명자는 인간이고, AI가 자동으로 창안하면 특허 자체가 거절됩니다.
핵심 변화: 발명자 표기
이전: 특허 출원 시 발명자만 명시 → 현재: 출원자가 "AI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상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특허청은 특허 심사 과정에서 AI의 역할이 "도구 수준"인지 "자동 창안 수준"인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CHAPTER 3
한국의 입장과 법적 공백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2024년 말 한국 특허청은 미국과 유사한 지침을 발표했으나,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국 특허법 제2조 제1호는 "발명이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작'은 '창조적 정신활동'을 의미합니다. AI는 이를 할 수 있는가? 법적으로는 아직 '회색지대'입니다.
한국 특허법 제33조는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는 발명자 또는 그의 권리 승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발명자'가 반드시 '자연인(인간)'이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호주의 논리와 유사합니다. 따라서 법리적으로는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 특허청은 실무상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발표한 지침에서 한국 특허청은 "AI는 도구이며, 발명자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명시했습니다. 다만 '과학기술부와의 협의'를 거쳐 향후 지침을 개정할 수 있음을 열어두었습니다.
문제는 이 지침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한국 기업이 AI를 발명자로 등록하려 하거나, 반대로 거절당하면 제소할 경우, 결국 법원이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판례가 없습니다.
더 복잡한 문제는 '국제 특허'입니다. 한국 기업이 AI를 이용해 발명한 것을 미국에 출원하려면 미국 특허청의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또 다른 기준을 따르거나 장차 바뀔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각 국의 규제를 모두 맞춰야 하는 이중 부담을 겪게 됩니다.
지역법적 입장실무 기준
미국AI 발명자 불가인간 발명자만 인정, AI 역할 명시
유럽AI 발명자 불가미국과 유사 (규정 준비 중)
한국법적 공백 (법원 판례 없음)인간 발명자 권장 (강제 아님)
호주AI 발명자 인정 가능일부 인정 (재판정 중)
CHAPTER 4
기업들의 선택: AI-Assisted 전략
기업들은 현재 법적 공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현명한 기업들은 'AI-Assisted 전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의 한 반도체 부서는 신규 공정 설계에 AI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특허 출원 시 발명자는 '담당 엔지니어'로 등재하고, 명세서에는 "AI 시뮬레이션 도구를 활용하여 공정 변수를 최적화했습니다"는 내용을 상세히 작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특허청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SK하이닉스는 더 나아갔습니다. 신약 개발팀이 AI를 사용할 때, 의도적으로 '인간 과학자의 지시와 검증 단계'를 문서화합니다. 예를 들어:
1 AI 입력 단계
"안정성이 높으면서도 독성이 낮은 신약 구조를 찾아달라" (인간의 구체적 목표 설정)
2 AI 제안 단계
AI가 5개의 분자 구조 제안 (AI의 도구적 역할)
3 인간 검증 단계
과학자가 각 구조의 화학적 타당성, 합성 가능성, 실험 데이터를 검토 및 선택 (인간의 최종 판단)
이렇게 문서화하면, 특허청은 발명자를 '그 과학자'로 인정하며, AI는 단순한 '설계 도구'로 봅니다.
더 흥미로운 기업 전략도 있습니다. LG는 자사의 AI 발명 시스템을 외부 회사나 대학 연구팀에 제공할 때, 'AI 역할 명세서(AI Role Declaration)'를 함께 제공합니다. 이는 특허 출원 시 "어떤 단계에서 AI가 개입했고, 어떤 단계는 인간이 했는가"를 명확히 하기 위함입니다.
2024년 글로벌 AI 특허 현황
미국 특허청에 출원된 'AI 관련 특허'는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AI 발명자' 등재 시도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미 '인간 발명자 + AI 도구' 모델로 출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CHAPTER 5
미래의 질문들: 법은 어디로 가는가
DABUS 이후의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Question 1: AI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창안한 발명은? 예를 들어, 인간이 아무 입력도 하지 않고, AI가 스스로 '흥미로운 신약 분자'를 발견한다면? 법은 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현재는 '거절'하지만, 미래에 이런 발명이 엄청난 가치를 지녀도 그럴까?
Question 2: AI의 특허권은 누가 소유하는가? 만약 AI가 발명자로 인정된다면, 특허권은 누가 갖는가? AI를 개발한 회사? AI를 사용한 회사? AI 소유자? 이 문제는 '소유권(ownership)'에 관한 근본적 질문입니다.
Question 3: 협력 발명은? 한 인간과 한 AI가 함께 발명했다면? 또는 여러 AI 시스템이 함께 창안했다면? 현재의 '공동 발명자(joint inventors)' 법제도로 충분한가?
Question 4: AI 발명에 대한 특허료와 갱신료는? AI가 만든 특허가 있다면, 그 유지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 이는 기술 혁신의 동기 부여와도 관련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2025년 초 세계지적재산기구(WIPO)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국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각 국이 어떻게 AI 발명을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모색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
1) AI를 활용한 R&D 과정을 상세히 문서화하세요. 2) 법무팀과 R&D팀의 정기 협의를 통해 특허 출원 전략을 수립하세요. 3) 국제 특허 출원 시 각 국의 최신 AI 가이드라인을 확인하세요. 4) 정부 및 업계 협회의 AI 특허 관련 정책 논의에 참여하세요.
EPILOGUE
발명자는 누구인가
이야기로 돌아가자. 신약 개발 회사의 화학자 이영준은 결국 어떻게 했을까?
그는 회사의 지적재산 팀에 "나는 AI 시스템에 '안정성이 높으면서도 독성이 낮은 신약'이라는 목표를 설정했고, AI가 여러 후보 분자를 제안했으며, 내가 각각을 평가해서 이 분자를 선택했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모든 기록 — 메일, 회의록, 시뮬레이션 파일, 실험 데이터 — 을 제출했습니다.
회사의 법무팀은 이영준을 발명자로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명세서에는 "본 발명은 AI 약물 설계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개발되었으며, 최종 선택은 연구자의 독립적 판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문구를 포함했습니다.
미국, 한국, 유럽의 특허청 모두에서 특허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그 신약은 임상 시험 승인을 받았습니다. 발명자로서의 이영준도, AI도, 그리고 그것을 만든 회사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을 얻었습니다.
발명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아직 완벽한 법적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는 AI가 아니라 인간이고, 인간은 AI를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입니다. 미래에 이 답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스티브 탈러의 DABUS 판정도 결국 이를 확인해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 글에 등장하는 기업명과 인물, 상황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 시나리오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인용된 통계와 수치는 공개된 보고서를 참고하였으나, 원문의 해석과 시점에 따라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법률 자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